엘로라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근교에 위치한 석굴사원이다. 방대한 크기의 사원 내부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와 관련된 총 34개의 석굴이 있는데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순례객이 많은 곳은 16번 석굴(Cave-16)로 현지인들은 이 석굴을 카일라쉬(Kailash) 사원이라 부른다. 카일라쉬의 정확한 산스크리트 명칭은 카일라샤(Kailāśa)이고 여기에 성지(聖地)를 뜻하는 나타를 붙여 카일라샤나타(Kailāśanātha)라고도 한다. 카일라쉬는 힌두교의 파괴신 쉬바(Śiva)의 고향에 있는 산(山) 이름이다. 쉬바가 평소 거주하는 곳으로 요가수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도 이 산을 우주의 배꼽이나 메루(Meru)산이라 부르는데, 특히 티벳에서는 ‘보배로운 설산(Kangri Rinpoche)’이라 칭하며 신성시한다. 엘로라의 카일라쉬사원은 쉬바의 거주처인 카일라쉬산을 거대한 단일 암벽을 깎아 형상화한 모놀리식(monolithic) 구조의 스타일로 관람객들은 그 규모에 놀라고 조각상의 위엄에 압도당한다.
카일라쉬사원을 포함한 엘로라 석굴사원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인도신화는 ‘라바나누그라하(Rāvaṇānugraha)’이다. ‘라바나(Rāvaṇa)에게 베푼 호의(好意, anugraha)’라는 뜻으로 쉬바신의 자애로움을 보여주는 신화 에피소드를 말한다. 라바나는 인도 대서사시 『라마야나(Rāmāyaṇa)』에 등장하는 락샤사(rākṣasa)의 이름이다. 불교에서는 나찰(羅刹)이라고 부르는 악마적 존재를 뜻하는 락샤사인 라바나는 랑카(Laṅka, 현재 스리랑카)를 지배하는 마왕으로 머리가 열 개, 팔이 스무 개 달린 강력한 힘을 지녔다. 『라마야나』에서는 라바나라는 이름의 유래와 쉬바가 라바나에게 어떤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신화로서 알려주는데 엘로라 석굴은 이 신화를 조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먼 옛날 마왕 라바나는 카일라쉬산 근처에 있는 도시 알라카(Alaka)를 약탈한다. 알라카는 라바나의 의붓형이자 재물(財物)신 쿠베라(Kubera)의 나라였다. 승리에 도취된 라바나가 쿠베라의 푸슈파카 비마나(Puṣpaka vimāna)라는 비행선을 타고 랑카로 돌아가던 중 아름다운 카일라쉬산을 발견한다. 라바나는 그 위를 날아가려고 했으나 쉬바를 수호하는 황소 난디(Nandi)가 나타나 이곳은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막아선다. 난디는 카일라쉬는 쉬바가 영주로 계시는 산이며 지금은 쉬바신이 부인 파르바티(Parvatī)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기 때문에 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며 라바나를 돌려보내려 한다. 이에 자신의 뜻대로 카일라쉬산을 지날 수 없게 된 라바나가 쉬바를 경멸하는 말을 내뱉자 난디는 라바나가 원숭이들에게 죽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난디의 저주를 받은 라바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쉬바 때문이라고 단정짓고 격분에 차 카일라쉬산을 뿌리채 뽑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스무 개의 팔을 산 아래에 넣은 채 괴력을 발휘하여 산을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라바나가 카일라쉬산을 들기 시작하자 지축이 들썩거리면서 그곳에 머물던 신들도 경악한다. 특히 쉬바의 배우자 파르바티는 겁에 질려 쉬바의 품에 안긴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지만 전지전능한 쉬바는 라바나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 엄지발가락으로 산을 눌러 그 아래에 라바나를 가두어 버린다. 마치 유희처럼 발가락으로 산을 뒤로 밀어 라바나의 팔이 그 사이에 끼어 꼼짝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라바나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 울음소리만 점점 커질 뿐이었다.
라바나의 울음소리에 다시 땅이 흔들리자 겁을 먹은 성자들이 라바나에게 달려가 쉬바께 용서를 구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라바나가 사면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 년 동안 쉬바를 찬미하는 찬가를 부르면서 그에게 의지하는 것뿐임을 알려준다. 이에 라바나는 쉬바를 찬양하는 ‘쉬바 탄다바 스토트라(Śiva-tāṇḍava-stotra)’게송을 천 년 동안 노래한다. 천년이 지나자 쉬바는 마침내 그를 용서하고 라바나를 풀어주면서 축복의 의미를 담은 천검(天劍) 찬드라하사(Chandrahasa)와 아트마 링가(Ātma-liṅga)를 하사한다.
그리고 쉬바는 “나는 당신의 찬가 때문에 오랜 시간 당신과 함께 기뻐했다. 산이 누르는 상처를 입은 당신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 삼계를 공포에 떨게 했고 모두가 그 흔들림을 느꼈다. 그러므로 오, 군주여, 그대의 이름은 라바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신들, 인간들, 약사(yakṣa, 夜叉)들, 지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라바나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라바나는 고통에 찬 울음을 토해 낸 존재였기에 이후에 ‘울음소리’를 뜻하는 ‘라바나’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엘로라석굴에서 만나는 쉬바와 라바나의 신화인 ‘라바나누그라하’는 ‘카일라쉬산 들어올리기’ 혹은 ‘카일라쉬산의 흔들림’이라고도 부른다. 이 신화를 담은 조각 상단에는 쉬바와 파르바티가 카일라쉬산에 앉아있으며, 하단에는 라바나가 산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배치되어 있다. 쉬바는 팔이 네 개로 왼손에는 자신의 주요한 지물(持物)인 삼지창(triśūla)이나 화살(pāśupatāstra)을 들고, 오른쪽 아래 팔은 무서워하지 말라는 수인(手印)인 시무외인(施無畏印, abhayamudrā)을 보여주면서 다른 오른팔은 겁에 질린 아내 파르바티를 껴안거나 무릎에 앉혀 그녀를 진정시킨다. 쉬바와 파르파티 주변은 쉬바를 수호하는 난쟁이 군대인 가나(gaṇa)가 둘러싸고 있으며 쉬바를 보호하는 황소 난디와 파르바티를 보호하는 사자가 조각되기도 한다.
인도신화에서 라바나는 악신 아수라(asura)의 일종으로 주로 탐욕스러운 왕으로 묘사된다. 라바나는 형의 도시를 빼앗고 거리낌 없이 쉬바의 영토를 침범하려는 지배욕과 권력욕을 가진 악한 존재로 가장 강력한 선신 쉬바와 대조된다. 이 신화에서 쉬바의 강력함은 아내를 안고서도 발가락 하나만으로 라바나를 지그시 눌려 제압하면서 드러난다. 악마가 내지르는 지진과 같은 울음과 비명소리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무외(無畏)의 강함으로 이어지고, 천 년의 시간을 인내하고 반성한 존재에게는 아낌없는 자비와 호의를 베푸는 진정한 강함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