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7월호

문화로 읽는 불교 4

부처님의 텀블러 사랑, 발우

- 주수완 / 우석대학교 교수 -

page 공양간에 잘 정열되어 있는 스님들의 발우

부처님의 발우는 생명 존중과 지속적인 공양을 상징한다

지구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줄이기가 화두가 되고 있다.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를 종이로 바꾼다고 하지만, 이것은 다만 플라스틱의 문제가 아니다. 종이를 쓴다고 그것이 환경을 살리는 길일까? 오히려 종이를 쓰고 버리는 것보다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디자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플라스틱 안경테가 그렇다. 갈색의 얼룩이 있는 플라스틱 안경테는 과거에는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말고 천연제품을 사용하자”는 것은 마치 플라스틱 안경테 대신 거북이 등껍질을 사용하자는 이야기가 되어 버릴 수 있다. 방점은 플라스틱이라는 재질보다는 ‘1회용’에 더 두어야 한다. 그래서 에코백, 텀블러, 나아가 그릇(용기)까지 들고 다니자는 광고도 있었다.

이처럼 1회용품 쓰지 말고 자신의 그릇을 들고 다니자는 운동의 시초도 부처님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발우(鉢盂)다. 바리떼라고도 하는데 산스크리트어로 발우를 뜻하는 ‘파트라(patra)’의 발음에서 나온 단어다. 발우는 불교수행자들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탁발로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결심하셨을 때부터 이미 발우도 그 원대한 마스터플랜 속에서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꼭 발우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연잎에 받아서 그릇처럼 쓰고 버리는 방법도 있고, 또는 값싼 1회용 토기 그릇도 대안이 될 수 있다.

page 인도에서 짜이를 마실 때 받은 토기잔

인도는 짜이의 나라라고도 할만큼 어딜 가나 짜이 차를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번은 짜이를 달라고 하니 1회용 토기잔에 담아주는 것이었다. 차를 마시고 돌려줘야 하나 했더니 그냥 버리라고 한다. 그래서 그 근처에 보니 그렇게 버린 토기잔이 잔뜩 쌓여있었다. 필자는 잔이 선사시대 토기처럼 보이는 것이 재밌어 조심히 챙겨서 한국에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이런 토기제품도 1회용품으로 많이 소비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부처님께서 굳이 이런 소모적인 1회용품 대신 밥그릇을 들고 다니라고 한 뜻은 생명을 소중히 다루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셨으리라 생각된다. 연잎도 그것을 구하려면 연꽃에서 잎을 따야 한다. 토기그릇도 그것을 굽기 위해서는 많은 장작이 태워져야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식물도 생명이기 때문에 함부로 꺾거나 따지 못하게 했다.

page 부처님께 발우를 바치는 사천왕.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그 대안이 자신의 밥그릇을 들고 다니는 것 아니었을까. 그 당시에는 환경문제 같은 것 때문에 1회용품 줄이기 운동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텀블러 들고 다니기 운동을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의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생명존중이든, 환경보호든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서로 통하는 문제다. 결국은 생태계라는 생명의 네트워크를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의 발우는 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승려들이 무거운 돌 밥그릇을 들고 다니기는 어려웠을 것이므로, 대체로 도기 그릇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처님의 밥그릇은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나무와 같은 생명을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여하간 무생물인 돌로 만들었다는 것은 부처님이 얼마나 신중하게 그릇을 선택하셨는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돌 발우는 사천왕이 부처님께 만들어드린 것이었다. 처음에 사천왕은 부처님이 발우가 필요하시다는 사실을 알고 각자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재료, 예를 들어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재료로 발우를 만들어 부처님께 바쳤다. 그러나 그런 귀금속으로 만든 발우는 수행자가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어서 받지 않으시자 다시 제석천이 알려준 바에 따라 히말라야 알랴산의 신성한 바위를 깎아 발우를 만들어 바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천왕이 각각 발우를 바치는 바람에 그릇이 네 개나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어느 한 왕의 발우만 받을 수 없어 일단 네 개를 모두 받은 후 이를 포개어 하나로 만들어 들고 다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발우는 테두리 부분이 네 겹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page 부처님 발우에 대한 경배.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이 설화는 부처님 발우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실제 강조하는 것은 공양이다. 사천왕은 인도의 신분제도에서 말하자면 크샤트리아, 즉 왕족이다. 이들 왕족은 그보다 높은 상위계층인 브라만을 잘 공양해야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천왕이 수행자인 부처님에게 발우를 바치는 이야기를 통해 사천왕은 단지 한 끼 식사만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공양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 지속적인 공양을 상징하는 것이 발우다. 다시말해 자신들이 발우를 드린 만큼, 그 발우에 담길 음식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와 같은 대표적인 거부들이 ‘1000억달러 클럽’이라는 기부모임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거부들이 “기부는 이렇게 멋진 것입니다”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사천왕도 사람들에게 “부처님께 공양하세요”라고 권하는 셈이다.

낭비를 막기 위해 고안된 부처님의 텀블러 발우는 이렇게 부처님께 대한 공양과 존경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린 후 등장한 초기의 불교미술에서는 부처님을 직접 표현하는 대신 이 발우로서 부처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스승이 자신을 계승할 제자에게 자신의 발우를 가사와 함께 전하는 전통도 생겨났는데, 이를 ‘의발(衣鉢)을 전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 발우에 공양을 해온 자신의 신도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그 발우를 전해받는 제자에게 똑같이 공경을 표하도록 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긴 것이다.

부처님의 발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부처님은 부처님을 이어 다음번 이 세상에 출현할 미륵에게 전하기 위해 이를 가섭존자에게 맡겼다고 한다. 가섭존자는 이 발우를 들고 마가다국의 계족산 바위 속에 들어가 미륵이 내려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라 한다. 사실상 가섭존자에게 주신 것일 수도 있지만 서운해할지도 모르는 다른 제자들을 위해 에둘러 말씀하신 부처님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